본문 바로가기
조지아/쿠타이시

일상ㅣ개한테 물려서 병원 가다(feat. 파상풍, 광견병 백신 접종)

by 지도 보는 코끼리 2023. 6. 10. 03:59
반응형

이제 여름이라고 해가 점점 길어져 8시가 돼도 밝다. 며칠 전 저녁에 공원에서 산책도 하고 근처 슈퍼에서 장도 보고 오던 길에 우리 집 건물 입구에서 개한테 물렸다. 중소형견이었는데 아이들이랑 잘 놀고 있다가 날 보더니 달려와서 왕! 물어버림. '넌 또 뭐야'하고 쳐다보는 사이에 주위에 있던 아저씨들이 개를 쫓아냈는데 바로 집으로 올라 가려다가 장 본 건 내려두고 바지를 걷어보니 피가 맺혀 있고 그새 멍도 들었다. 물렸을 때 개를 떨어뜨리려고 움직였으면 상처가 더 깊었겠지. 

 

다리를 살펴보고 있으니 아이들과 아저씨들이 다시 왔다. 다리를 보더니 맞은편에 있는 작업 공간 같은 곳에 앉히고는 소독약을 부으셨다. 너무 따가워서 소리 지를 뻔. 아저씨 왈. 괜찮다고, 이전에도 저 개가 사람을 많이 물었다고. 네? 사람을 많이 물었는데 아직 여기 있다구요? 마침 쿠타이시에서 알게 된 현지인이 연락 와서 말하니 피나냐고, 피나면 병원에 가서 광견병 주사 맞아야 된다길래 상처가 깊은 것도 아니고 스크래치가 좀 생겼고 피가 맺힌 정도여서 괜찮다고 약국에 가서 약만 사겠다고 했다. 

 

집에서 물린 부위를 5분쯤 물로 씻어내고 비누로도 씻었다. 항생제를 사려고 약국에 가서 다리를 보여주니 병원에 가야 된다고;; 그 사이에 멍이 더 퍼지고 심해졌네. 한국에서 키우던 개한테 손을 물린 적은 있지만 이렇게 크게 멍들고 피 맺힐 정도로 물린 건 처음이라 병원에 가기로 하고 지인에게 연락했다. 계속 병원에 가야 된다고 근처에 있으니 데려다주겠다길래.

 

이미 9시 30분이 넘었고 거리에는 사람들도, 차도 많이 없어서 다시 집에 가서 여권 챙기고 지인 차 타고 응급실행. 약국에서는 근처 병원을 알려줬는데 지인 말로는 불친절하고 별로인 곳이란다. 집 근처라서 그곳을 알려줬을 거라고. 그래서 지인이 추천한 병원으로 갔다. 본인도 몇 번 물려봤는데 여기에서 주사 맞았다고. 몇 번이나? 의사인 친구한테도 물어봤는데 여기를 추천했다고. 개한테 물리면 이 병원으로 많이 온다고. 평점은 별로인데 최근 평은 나쁘지 않다. 

 

 

응급실

 

안내 표지판을 따라 응급실로 추정되는 곳의 문을 여니 대여섯 명 정도 있었다. 응급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접수 및 대기하는 곳이 작았다. 대기 중에 구급차 왔다고 옆에 있는 문을 대문처럼 열 때 응급실이구나 싶었다. 접수할 때는 개한테 물렸다고 쓰고 번역기를 보여줬다. 조지아어를 하는 지인 덕분에 접수도 쉽게 했고 대기가 적어서 진료를 보기까지 10분도 안 걸린 듯하다.

 

내 이름으로 된 파일을 만들고 사인하라고 종이를 준다. 내 파일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는 건 조지아어 사이에 유일하게 알아볼 수 있는 내 여권번호. 무슨 서류인지 모르지만 사인해야지. 사인 안 하면 진료 거부 당하겠지.

 

안내실안내 직원

 

접수 후 안으로 들어가서 제일 먼저 코로나 검사를 했다. 코에 깊게 찌르는 게 아니라 그냥 형식적으로 흉내만 내는지 면봉을 살짝 넣고 빼서 전혀 안 아픔. 대기 겸 접수를 하는 공간과는 달리 문 하나 열었다고 뭐 딱히 놓여 있는 것도 없는데 공간이 크다. 접수할 때 직원이 컴퓨터에도 입력을 했지만 안에 들어오니 내 파일을 보고 장부에 또 뭘 적는다. 자동과 수동이 혼용되는군.

 

직원 안내

 

안내를 받아 진료실로 가니 의사 할아버지와 어시스턴트 한 명, 환자로 보이는 아저씨 한 명이 있었다. 계속 나와 지인에게만 설명해 주길래 저 사람은 뭐지 했는데 집에서 키우던 개한테 물려서 온 거라고. 아저씨도 백신 접종 당첨. 그런데 아저씨네 개는 광견병 접종 완료해서 3회만 맞으면 된단다. 한국에서 파상풍만 맞고 일정이 맞지 않아 광견병 주사는 안 맞았는데 물릴 줄이야.

 

의사 할아버지에게 다리를 보여줬다. 물로 씻어내고 왔다고. 개 귀에 태그가 있었냐고 물었다. 노란색 태그가 있었다고 말하니 그럼 그 개한테 광견병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고 파상풍 주사도 맞고, 한 달 동안 광견병 백신을 5회 접종해야 한단다. 2주 후에도 그 개가 살아 있는지 잘 보라고. 그 개 죽었음 광견병에 걸린 거라고. 내 안위가 너에게 달린 거니? 물리는 와중에도 귀부터 봤다. 한국에서 오기 전에 파상풍 주사도 맞았고 효과는 10년으로 알고 있는데 의사에게 말하니 다시 맞으란다.

 

의사가 면역 글로불린(이뮤노글로불린, Immunoglobulin)도 맞겠냐고, 설명을 이해하기로는 접종자 중 94%는 괜찮은데 6%는 알레르기 때문에 죽기도 한단다. 맞으면 4시간 동안 경과를 지켜봐야 된다고. 인터넷을 찾아보니 백신과 함께 가능한 한 빨리 맞는 게 좋다고 나와서 맞겠다고 했다. 그런데 6%의 확률에 대해 계속 설명하더니 지금 결정 안 해도 되니까 다음 접종일까지 생각해 보란다. 맞겠다는데 왜 그래요. 94가 6보다 더 크잖아요.

 

설명 중에 두어 번 더 지금 맞겠다고 했는데 생각해 보라고 무한 반복. 의사 할아버지한테는 6%가 더 크게 와닿나 보다. 언제 끝나나 싶을 정도로 이 주사에 대한 설명을 많이 해주셨다. 

 

드디어 긴 설명이 끝나고 이제 주사만 맞으면 되는 건가 싶었는데 한 달 동안 다이어트를 해야 된단다. 네? 다이어트요? 한국에서는 체중 조절, 체중 감량쯤 되지만 해외에서는 식단 조절. 광견병 주사 하나 맞는데 한약도 아니고 식단이요? 몇 번을 되물어도 특정 음식을 먹지 말라는 게 맞다. 와...  두세 개도 아니고 많다. 

 

섭취 금지: 식초, 생우유(치즈 가능), 돼지고기, 견과류, 계란, 초콜릿, 사탕, 탄산음료, 술, 커피, 꿀

섭취 가능: 닭고기, 소고기, 콩, 감자 등

 

먹지 말라는 거 외에는 다 먹어도 된다. 돼지고기 못 먹냐고 되물으니 닭고기랑 소고기 먹으란다. 꿀도 못 먹냐니 콩이랑 감자도 먹을 수 있다고 그거 먹으란다. 그럼 뭐해요. 매일 먹던 걸 못 먹는데. 심지어 장 볼 때 우유랑 계란, 꿀도 새로 샀음. 초콜릿 매일 몇 개씩 먹음. 집에 쌓아두고 먹음. 토마토+설탕보다 토마토+꿀이 더 맛있는데.

 

한국에서는 광견병 백신 맞는 동안 먹으면 안 되는 음식이 없나 보다. 그럼 나 이거 다 먹어도 되는 거 아닌가 싶지만 한 달 동안 끊어보기로 했다. 기나긴 설명 끝에 조지아어로 된 종이를 내밀더니 사인하란다. 설명을 들었다는 확인서와 동의서겠지. 지인이 통역해 줬기에 지인도 내 사인 옆에 사인함. 

 

광견병 백신 접종 1차로 양쪽 팔에 하나씩 맞고 파상풍은 등에 맞았다. 백신은 안 아팠는데 파상풍은 아파서 아! 소리 냄. 한국에서 맞을 때도 파상풍 주사는 아팠는데. 넌 언제 맞아도 아픈 거구나. 그런데 끝까지 드레싱은 안 해줌. 집에서 물린 부위를 씻은 게 응급처치였던 건가. 

 

계산할 때 시계를 보니 벌써 11시가 넘었다. 거의 1시간을 있었네. 의사 할아버지 설명에 시간이 다 갔다. 100라리면 될 것 같아서 예금 계좌에서 100라리만 입출금 계좌로 이체했다. 그런데 250.50라리 나옴. 은행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지 추가 이체가 안 돼서 결국 입출금 계좌에 있는 금액만큼만 카드로 결제하고 나머지는 현금으로 결제했다. 다음 백신 접종부터는 73라리만 내면 된다지만 73라리도 비싼데? 구글 평을 보니 응급실이라서 비싼 건 아닌 것 같다. 원래 비싼 듯.

 

진료비: 88.50 GEL, 파상풍 접종: 88.50 GEL, 광견병 백신: 73.50 GEL

 

백신 다 맞고 어디가 아프든 병원 한 번만 더 가면 보험 든 보람이 생기네. 

 

개한테 물렸을 때 조치

 

1. 물로 물린 부위 씻어내기

     - 비누가 있으면 비누 사용

2. 상처가 깊으면 병원 가기

     - 광견병이 우려돼도 병원 가기

3. 신분증(여권) 지참

     - 접수 시 신분증, 주소, 조지아 폰번호 필요

4. 환자 파일을 받는 경우 진료 시 의료진에게 전달

     - 병원에서 보관

5. 백신 접종 일정이 적힌 종이 받아서 보관하기

     - 종이에 적힌 날짜에 병원 방문 후 접종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