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쯤 전에 집주인이 여름 성수기 동안 1,500라리로 인상하겠다고 해서 계약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했다. 작년엔 1,000라리였는데. 전쟁 후로 물가며 임대료며 급등하고 있는 건 알지만 이미 내 예산을 벗어나고 있다고, 이사를 가겠다고 했더니 같은 건물에 사촌이 임대하고 있는데 좀 더 쌀 거라고 알아봐 준댔다. 사촌이 가지고 있는 방은 더 작은지 월 1,200라리. 예전 같았음 '그래 그냥 있자. 이렇게 좋은 집주인을 만날 가능성도 희박해.' 했을지도.
가끔씩 해변 자전거 도로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것도 좋고 산책로를 따라 항구까지 걸어가는 것도 좋고 한 번씩 밤에 음악 분수 구경하는 것도 좋고 계산할 때면 늘 웃어주시고 조지아어라도 한 마디 할 때면 놀라면서 더 웃어주시는 캐셔 아주머니도 좋고. 일주일에 한 번 아님 2~3주에 한 번씩 사람들과 만나서 얘기하는 것도 좋고. 입지도 좋은데 심지어 집주인은 더 좋고. 얼마 전에 이사 온 위층을 제외하고는 앞, 옆, 아래층이 모두 공실이어서 층간 소음이 거의 없었다.
그래도 금액적인 부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고 작년처럼 성수기 이후에는 월세를 인하한다지만 1,000라리 미만으로 내려올 것 같지는 않았다. 원화 가치도 계속 떨어지고 있어서 처음 왔을 때와 비교하면 같은 500라리여도 4~5만 원 정도 더 비싸다. 전쟁 후로 조지아에 달러가 몰려서 달러 가치도 훅훅 떨어졌다. 원화 대비 달러는 오르는데 이중으로..
그래서 여러 가지 대안을 생각했다. 6월까지 임대하는 곳을 구해서 수영이라도 한 번 하고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갈까, 성수기 동안 바투미 인근 소도시에 머물다가 8월에 다시 바투미 숙소를 알아볼까 아니면 가보지 않은 곳에서 다시 처음부터 새로 적응해 볼까.
6월까지 임대하는 곳이 있었지만 저렴한 편도 아니고 위치도 별로여서 패스. 인근 도시는 부동산 사이트에 올라오는 집이 별로 없었다. 이사 갈 도시는 KFC와 맥도널드가 있는 도시 중에 한 곳으로 알아봤다. 그만큼 다른 도시보다는 인구가 더 많다는 거니까. 자주 먹지는 않지만 한 번씩 먹고 싶을 때도 있고.
주그디디도 괜찮아 보였는데 몇 번 얘기해 본 조지아 사람에게 주그디디와 쿠타이시에 대해 물어보니 쿠타이시가 낫다고. 트빌리시에서 살다가 가족들과 함께 바투미로 온 아줌마한테도 물었더니 바람이 많이 불어서 그렇지 쿠타이시 괜찮다고. 쿠타이시는 분지 같은데.. 그럼 여름엔 쪄 죽지 않을 만큼 덥고 겨울엔 얼어 죽지 않을 만큼 추울 텐데. 그래도 쿠타이시로 결정. 한 번 살아보지 뭐.
쿠타이시는 올해 1월에 두바이 갈 때 공항을 가본 게 다다. 그래서 답사를 가보기로 했다. 계속 비 예보가 있어서 살고 있는 집 계약이 만료되는 주에 2박 3일 동안 있으면서 집을 알아봤다. 사전에 스트리트뷰로 원하는 동네를 2군데 봐뒀다. 숙소는 호텔이나 에어비앤비가 아닌 호스텔에 묵었다. 집주인과 통화해야 될 때면 호스텔 직원에게 부탁하려고.
이틀 동안 부동산 중개인 1명, 집주인 몇 명과 연락을 했지만 결국 못 구했다. 중개인은 크게 관심 없어 보였고 집주인 한 명은 사이트에 올라온 것보다 100라리를 더 요구했다. 또 다른 집주인들은 호스텔 직원과 잘 통화하다가 외국인이 살 거라고 하니 외국인에게는 임대 안 한다고. 의사소통이 안 될 거라고 생각한 건가.. 번역기 쓰면 되는데. 그렇게 해 잘 들어오고 월세 싸고 괜찮아 보이는 집들을 놓쳤다.
그러다 밤에 한 곳 더 문자를 보냈는데 다음 날 아침 일찍 문자가 왔다. 임대 가능하다고. 몇 명이 살 거냐고. 저녁 6시에 집을 보여줄 수 있으니 그때 보자고. 호스텔 체크아웃 후에 시간이 많으니 마르슈카 정류장에 가서 바투미로 가는 막차 시간도 확인하고. 오전에 물어봤을 때는 저녁 7시가 막차라고 했는데 혹시 몰라 6시가 되기 전에 가서 물어보니 6시 25분이 막차라고;; 그 와중에 집주인은 10분 정도 늦는다고.. 막차 시간은 기사 마음인가 보다.
다행히 보러 갈 집이 마르슈카 정류장과는 멀지 않아서 기사 아저씨에게 30분까지 올 테니 5분만 늦게 출발해 달라고 부탁했더니 이런 고마운 아저씨. 알겠다고 갔다 오란다. 아침에 연락 왔을 때 정확한 주소를 물은 게 신의 한 수였을까. 체크 아웃하고 쿠타이시를 둘러보기 전에 받은 주소로 찾아가서 건물과 위치를 확인했었다. 진짜 이 건물이면 좀 시끄럽겠는데 했었다.
인상 좋은 주인집 할아버지와 도착하니 그 건물이 맞았다. 그런데 웬걸. 도로 방향이면 시끄러웠을 텐데 안쪽이라 주변 소음이 안 들린다. 근처 목공소 같은 곳에서 작업하는 소리 말고는. 창문을 닫으면 거슬릴 정도는 아니다. 사이트에 올려둔 사진과 달라도 못 살 정도가 아니면 괜찮다고 바투미에서 퇴실하는 날 바로 이사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정말 집을 둘러보는데 5분도 안 씀. 시간도 없고. 그렇게 하루만에 집을 구했다.
이전 세입자가 이웃들이 항의할 만큼 밤늦게까지 사람들 불러서 파티하고 시끄럽게 해서 내쫓았단다. 실제 집주인이라는 해외에 사는 며느리와 통화했는데 몇 번을 혼자 살 거 맞냐고 다른 일행 없냐고. 나중에라도 같이 살 사람이 생기면 월세 안 올릴 테니까 꼭 말해달라고. 이웃들 다 좋으니까 시끄럽게 하면 안 된다고. 다른 건 몰라도 조용히 하는 것 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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