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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바투미

일상ㅣ바지 수선하기(feat. 겨울 날씨)

by 지도 보는 코끼리 2023. 1. 26.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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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이상기온 현상이 뉴스에 나오더니 바투미도 작년보다 따뜻하다. 아직 2월이 남았지만 작년 겨울에는 밖에 나갈 때면 히트텍에 니트에 옷도 여러 겹으로 껴입었고 집에서도 너무 추워서 이불 덮고 침대에만 있을 정도였다. 욕실에도 라디에이터가 있고 작은 이동식 라디에이터도 있지만 켜놔도 켜 놓은 시간에 비해 따뜻하지 않아서 잘 쓰지는 않았다. 에어컨 히터 모드가 난방을 선도했지만 금방 건조해지길래 비염 때문에 정말 추울 때 15~20분 잠깐씩만 켰었다.

 

페이스북에는 난방비 폭탄으로 원래 이렇게 많이 나오는지 묻는 글들이 많이 올라왔었는데 올해는 아니다. 며칠 전에는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 산책하는 사람들도 봤다. 그렇다고 매일 따뜻한 건 아니고 맑은 날씨지만 잠깐씩 찬바람이 칼바람처럼 불기도 한다. 그래도 아직 한  번도 히터를 안 틀었다는 건 추워도 작년만큼 춥지는 않다는 거겠지.

 

작년에 왔던 눈은 다음 주면 2월인데 아직 오지도 않고, 며칠 뒤에 눈 소식이 있어서 기다리면 금세 날씨가 바뀌어 흐리거나 비가 왔다. 작년에 너무 추워서 올해는 월동 준비도 다 해놨는데. 

 

날씨도 좋고 외출할 일도 있어서 기장이 긴 바지를 챙겨 수선집에 갔다. 6 May 공원과 유럽 스퀘어 사이에 있는 곳인데 오며 가며 봐뒀던 곳이다. 수선집은 호파 시장에도 있고 집 근처에도 있는데 그냥 여기에 가보고 싶었다. 반지하에 있는 곳으로 문을 열고 들어섰다.

수선집바깥 풍경

 

몇 평도 안 되는 작은 공간에서 재봉틀 앞에 앉아 작업을 하고 계시는 할머니 두 분과 한켠에서 옷 정리를 하고 계시던 할아버지 한 분이 일제히 나를 보셨다. 무슨 일로 왔는지 묻지도 않으시고 몇 초간 대치 상태. 난 눈 똥그랗게 뜨고 미소 장착. 

 

바지 기장을 줄이고 싶다고 손으로 바지를 잡고 줄이고 싶은 만큼 알려 드렸다. 집에서 잰 길이만큼 손을 펴서 바지에 세로로 댔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바지를 받아 들어서는 바지에 손을 가로로 대시더니 손가락 네 개로 표시하셨다. 아.. 갑자기 다들 호탕하게 웃으셨다. 아이스 브레이킹 별거 아니네.
한국에서도 옷에 가로로 손을 대고 손가락 2개 길이, 3개 길이로 수선했었는데 난 왜 갑자기 세로로 쟀을까.

 

서로 영어와 조지아어가 안 돼도, 번역기 앱을 안 써도 찰떡같이 의사소통하고 기다렸다. 할아버지가 초크로 바지에 표시하고 표시한 기장대로 자른 다음 다른 재봉틀에 앉아 수선을 마무리하셨다. 

 

재봉틀재봉틀

 

기다리는 중에 재봉틀 자석에 핀이 붙어 있길래 신기해서 핀을 붙였다 뗐다 했는데 갑자기 가까이에서 레이스를 뜯고 계시던 할머니가 내쪽 탁자 모서리에 핀을 여러 개 두셨다. 나랑 눈도 마주쳤고 난 그것도 재봉틀에 붙이라는 건 줄 알고 가져다가 재봉틀에 붙였는데 아니었다. 할머니가 뭐라 말하시길래 아니구나 싶어서 다시 떼다가 탁자 모서리에 그대로 두었다. 그랬더니 러시아 사람이 조지아어를 이해하냐고 물었다.
그냥 guess? 이런 눈치는 좀 있나 보다. 그걸 또 알아듣은 거였구나.

 

10분쯤 기다렸나.. 수선이 끝났고 기장 줄이는 데 지불한 금액은 5라리. 감사 인사도 하고 집에서 펼쳐봤다. 음.. 결과물이.. 울퉁불퉁하고 바짓단에 약간의 곡선이 생겼다. 손수 바느질을 한 것도 아니고 재봉틀을 사용한 건데 왜죠? 뒤쪽에 있던 할머니는 청자켓을 리폼하시는 것 같던데 할아버지.. 그나마 검은색 바지에 밑단이어서 다행이다.
뭐 어때. 기장도 줄였고 잘 입고 다니면 그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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