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이 시작된 지 이제 한 달도 채 안 됐지만 도시에서는 여러 가지 사건 사고가 있었다. 쿠타이시에서는 화이트 브리지 바닥의 유리가 깨졌고,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이 칼을 들고 중심가에 있기도 했고 바투미에서는 어제 폭탄 신고로 공항 운영을 중단했다더니 오늘 저녁엔 쇼핑몰 네 곳에서 사람들을 대피시켰다. 외신은 폭탄 설치나 테러 예고를 언급하던데 조지아 당국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한 건 없어 보인다.
그래도 시작한 거 운동은 가야지.
기존에 운동을 하러 가던 곳이 시설물 점검과 유지보수를 이유로 1월 한 달간 문을 닫았다. '미리 좀 알려주지 왜 1월달 등록을 하려니까 알려주는 거야' 했지만 이미 페이스북에 공지가 올라온 지 열흘도 넘었는데 내가 확인을 안 해서 몰랐던 거였다. 한 번씩 들어가 봐도 공지가 없어서 한동안 안 들어갔더니 그새 공지가 올라왔었네.
보통은 이렇게 된 거 한 달 쉬었겠지만 운동할 수 있는 다른 곳을 알아봤다. 조건은 너무 멀지 않아서 버스가 안 와도 도보로 이동할 수 있고 밝고 좀 넓은 곳. 집 주위에 헬스장 몇 군데가 있지만 사진으로 봤을 때 작거나 좀 어두워 보이거나. 버스가 바로 앞에 서는 헬스장은 넓었지만 너무 활기찬 분위기였다. 그래서 지금 다니기 시작한 곳으로 결정. 버스가 안 다니는 안쪽 길에 있지만 버스 기다리는 시간에 걸어가면 되니까. 마침 새해를 맞아 할인 행사도 진행 중이었다.
헬스장을 방문해서 프로그램이 있는지 물어보니 프로그램이 프린트된 종이를 보여줬다. 필라테스, 요가, 킥복싱 등이 있었다. 금액이 헬스에 비해 많이 비싼 건 아니어서 필라테스를 문의했지만 결론은 여기는 조지아라는 거. 직원에게 필라테스 기구가 있는지 문의하니 작은 방을 보여줬다. 정말 작은 방이지만 기구가 몇 개 있었다. 필라테스 + 헬스장 자유 이용을 등록하려고 했더니 직원이 어디로 전화를 했다.
통화 후 하는 말이 화요일 오전에만 가능하단다. 수업 시간이 이렇게 많은데 딱 화요일 오전만 된다니. 그럼 적어놓지나 말지. 한 달치를 내고 4~5회만 하는 거냐고 여긴 한 달에 12회라고 적혀 있는데? 번역기로 대화하다가 직원이 옆에 있던 트레이너를 불렀다. 나머지 7번은 언제 하냐고 물으니 안 한다고. 뭐지;; 결론은 매주 화요일에만 하니 1일 수업료를 내고 다니라는 거였다. 1일 수업 6회 받는 거랑 한 달치 등록해서 12회 받는 거랑 금액이 같은데? 그럼 왜 12회 수업을 적어 놓은 거야.
그래서 결국 헬스만 한 달 등록. 원래 한 달에 무제한 방문은 120 GEL인데 할인해서 100 GEL. 2개월치는 더 많이 할인하는데 난 한 달만 다닐 거니까 한 달만 등록. 여권을 주고 폰 번호도 알려줬다. 시스템에 등록할 건지 사진도 찍었다. 헬스장 입장 카드 10 GEL 별도. 여기도 입구가 지하철 개찰구다. 1주일쯤 다니고 나서 알게 된 건 자동을 가장한 수동이라는 거. 카드를 찍어도 작동을 안 해서 데스크 직원을 쳐다보거나 잠깐 기다리면 갑자기 초록색 불이 들어오면서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어떤 날은 카드를 찍지도 않고 그냥 서 있었는데 열림.
처음에는 탈의실 사물함을 카드로 열고 잠그기 때문에 카드를 꼭 가지고 다녀야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이젠 좀 다녔다고 굳이 필요한가 싶다. 사물함 안에 외투를 걸 수가 없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을 열면 보이는 벽걸이에 외투를 걸어둔다. 샤워실도 있는데 칸막이 형태로 뜨거운 물도 바로 나오고 수압이 엄청 세다. 샤워실은 난방이 안 돼서 우리 집보다 쌀쌀하지만 뜨거운 물에 수압까지 세서 운동을 마치면 보통은 샤워까지 하고 온다. 우리 집 보일러는 작아서 뜨거운 물을 쓰려면 몇 초 기다려야 되고 가끔은 샤워하는 중에 찬물로 바뀌기도 하니까. 샤워 부스는 4개밖에 없지만 샤워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여유 있게 샤워할 수 있다.
동네 헬스장보다 넓어 보이더니 운동 기구도 많다. 천국의 계단도 한 대 있는데 이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대기 없이 이용할 수 있다. 왜 천국의 계단이라고 부르나 했더니 해본 사람만 알겠더라. 난 이제 입문했으니까 15층까지만 하는데도 이미 천국 문 앞에 온 것처럼 힘들다. 실제로는 천국 초입에 들어서지도 못한 거겠지. 한국에서는 어떻게 사람들이 5단계로 20분, 30분씩 하는지 모를 정도로 힘들다.
처음 일주일은 유튜브에서 '한혜진 헬스장'을 검색하면 나오는 영상도 보고 거의 모든 기구를 한 번씩 돌아가면서 해봤고 2주 차부터는 일부만 2세트, 3세트씩 한다. 이전에 사용한 적 없는 기구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걸 보거나 기구에 그려진 그림을 보고 이용한다.
처음 등록할 때 금액 차이도 적은데 PT를 할까도 했지만 한 달만 하는 거라서 PT 없이 헬스만 등록했는데 다른 사람들이 하는 걸 보니 PT 안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트레이너인 줄도 몰랐다. 회원이 운동 기구를 이용하고 있는데 트레이너들은 그냥 옆에 서서 보고 있거나 자리 비우고 왔다 갔다 하거나 다른 회원과 담소를 나누거나.
내가 가는 시간대에 있는 대여섯 명쯤 돼 보이는 트레이너 중에 지금까지 괜찮아 보이는 트레이너는 딱 한 명이다. 지난주에야 그 사람이 트레이너인 줄 알았다. 여자 트레이너인데 여자 회원들이 운동할 때 적극적으로 자세도 알려주고 러닝머신을 이용할 때면 가끔씩 옆에서 같이 하기도 하고. 나보다 일찍 왔는데 나보다 늦게 가길래 그냥 김종국 같은 회원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트레이너.
여기는 남자 트레이너가 남자 회원을 상대하더라도 어떤 근육을 써야 되는지 알려주는 것도, 근육이나 몸에 손을 대는 것도 못 봤다. 운동 기구 사용법을 알려주는 것도 몸소 보여주거나 말로 설명하거나.
그리고 의외인 건 운동 전후로 스트레칭을 하는 사람들이 적다는 거. 꽤 오래전에 PT 받을 때는 스트레칭을 안 하면 러닝 머신도 못 하게 하고 운동 끝나고 다리에 힘이 풀려도 스트레칭을 해야 집에 갈 수 있었는데. 몇몇은 운동 후에 폼롤러로 근육도 풀고 스트레칭도 하는데 대부분은 그냥 간다. 나만 운동 전후로 스트레칭하는 듯.
1월 1, 2일 연휴 후에 3일부터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점점 귀차니즘과 이불 밖은 위험해서 운동 가는 시간이 늦어지고 있다. 보통은 오전에 가서 2시간 정도 운동을 하는데 간혹 배가 고파오거나 하기 싫을 때는 10~20분 정도 일찍 마무리한다. 처음에는 집에 와서 점심을 먹으면 딱이었는데 근래에는 늦게 가는 바람에 점심시간을 놓치기도 한다. 점심을 먹고 가면 저녁을 늦게 먹게 되고;;
요즘은 쿠타이시 농구팀 선수들이 운동을 하러 와서 시끌시끌하다. 큰 소리로 말하고 공간 하나를 다 차지하고. 운동선수들이 올 때면 갑자기 시끄러워지는 것 말고는 나쁘지 않지만 그래도 한 달만 다닐 거다.
천국의 계단,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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